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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4 22:45

관측 갔슈

(*.79.196.166) 조회 수 169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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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 갔슈

어제 밤에 아산 영인산에서 혜성을 촬영할 때였습니다. 한 별친구분이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면서 은근히 자랑을 하셨습니다.

‘이거 말이요 집에서 보낸 문자메시지입니다. 다른 분들은 와이프가 이런 문자메시지 보내는가 몰라...’

그 문자 메시지는 실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감동적인 문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문구인 즉선

‘관측 갔슈’

단 네 음절의 짧은 문자이지만 지아비를 걱정하는 아내의 심정이 절절이 배어있는 문자라고 생각되어 졌습니다. 관측 간 남편이 혹시 차가운 밤 기온에 옷은 따뜻하게 입어 감기는 걸리지 않을지, 저녁은 잘 먹고 가서 배는 고프지 않은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문장이라 하겠습니다. 안 그럼 집안에서 살림하는 부인들이 혜성의 이온꼬리 길이가 잘 나왔는지, 다스트 꼬리가 길이가 찍혔는지 궁금해서 밤늦게 이런 문자를 보낼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보고싶지만 중년이 되어

‘자기~ 어디 갔어요? 전화해보니 안계시는군요. 관측가셨어요? 옷은 잘 챙겨 입고  가셨어요? 그리고 식사는 챙겨 드셨는지요? 자기 아이라뷰~~ 쪽!’

이렇게 적을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함축하여 한 마디로 끝낼 수 있습니다.

‘관.측. 갔.슈’

단 네글자를 보는 순간 저는 이 댁의 사모님은 백제 정읍사를 능가하며, 조선 이응태 부인을 능가하는 한국적 여인의 표상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국화꽃 향기보다 더 아름다운 정겨운 광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이처럼 한국부인들의 애틋한 남편 사랑은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왔는데, 백제 정읍사를 보면

달님이시여, 좀더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 비추어 주소서
지금쯤 전주 시장에 가 계시옵니까?
어두운 밤길을 가시다가
혹시 진데를 디뎌 흙탕물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옵니다.
몸이 고달프실 텐데 아무 데나 짐을 부려놓고 편안히 쉬소서
당신이 가시는 길에 날이 저물까 두렵사옵니다

여기서 ‘진데를 디뎌 흙탕물에 빠진다’는 뜻은 물장사하는 집에 간다는 뜻입니다. 즉 그 당시에도 전주에는 룸싸롱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시장 간 남편이 제발 룸싸롱 가지 말고 무사히 집에 오라는 한국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표현한 노래라 하겠습니다.

1998년 경북 안동에서 이장을 위해 발굴된 이응태 무덤에서는 아주 귀한 부인의 한글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1586년(병술년)에 31세로 요절한 남편을 그리며 적은 아내의 편지는 지금도 심금을 울립니다. 요 위의 그림이 무덤속에서 발견된 부인의 편지 원본 그림입니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 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 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어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내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휴대폰도 없고 전화도 없었고 문명의 기기 하나 없었던 그 옛날에 남편을 여읜 아내의 마음은 지금과도 전혀 다를바 없고,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도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 살아 있는 듯 생생합니다. 윗 글의 편지 원문을 유심히 보면 당신-->자네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제가 어릴 적에도 경상도 노인네들이 제법 사용하였습니다. 또 병술년-->뵝술년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도 갱상도 사람들은 ‘ㅕ’ 발음이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몬저라고 하는 것도 지금 경상도에서는 사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관속에 누워 있는 남편이 이 편지를 읽어보고 꿈속에라도 찾아와 달라는 글귀는 우리들을 너무 안타깝게 합니다.

그러다 시대는 변하고, 세상은 문명화되어 마음을 표현하는 기법은 달라졌어도, 생각해주는 마음은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읊어보노니 감동받은 그 문구!

관. 측. 갔. 슈  

문자에 감동받고 집에 와보니 우리 마눌은 세상 모르고 디비지 자고 있었습니다.


ps) 1.그런데 인준씨 오늘 오후 5시경 전화를 하니 안받더군요.  관측 갔슈? 날도 흐린데...
      2. 그리고 이 휴대폰 문자메시지는 그 별친구분이 보여줘서 본 것이 제가 몰래 본 것이 아닙니다. 오해 없어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나서/ 아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만나/ 어설픈 살림살이 서툴긴 해도/ 얼룩진 행주치마 정이 들었네/ 더러는 야속하고 미운 생각에/ 눈물 많은 여자 마음 애도 타지만/ 젖은 손이 애처롭다 하신 그 말은/ 여자의 아픈 정을 달래줍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한 사람/ 하늘같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 추현석 2004.05.14 23:21 (*.242.81.186)
    돌아온 다음날 하루종일 바가지 안긁으면 다행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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