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상(色相)의 추억
며칠전에 노목자연탐사관에 가서 필드스코프를 보니 필드스코프로 보는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쌍안경으로 보는 경치와도 다르고, 망원경으로 보는 경치와도 다른, 또 다른 멋있는 자연의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으로 꽃만 잠시 보았지만, 새를 보면 아주 이쁘게 잘 보일 것같았습니다. 지금도 이 필드스코프로 본 그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필드스코프나 쌍안경이나 보여주는 광학원리는 같으므로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실 달랐습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었습니다. 하기사 노목자연탐사관의 필드스코프는 아주 고성능이라 하므로 화질이 더 좋았을겁니다.
그러다가 그저께 니콘D100 다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처음 사진을 찍어보았는데, S2PRO와는 약간의 화질 차이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색상...이것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왜 이 놈은 보이는 광학기구에 따라 천차만별이란 말인가? 색상 과연 너는 뭐시란 말인고?
새삼 색상에 대한 괴로운 추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색상에 대해서 탐구는 별 안했지만, 애로사항을 겪어 보기로는 낙동강도 한 가락 합니다. 그래서 김세현 사장님에게도 초기 선택을 잘 하시라고 이야기한겁니다. 그럼 비 오는 늦여름날에 색상에 대한 추억을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
냉장고나 에어콘 등의 냉동 공조기기는 압축기(컴프레스)가 있고 그 안에는 모터와 냉동기용 오일이 같이 밀폐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자동차의 엔진오일은 일정 주행거리 이상이면 교환이 가능하지만, 냉동기기용 압축기는 10년이고 20년이고 못쓰게 될 때까지 오일 교환을 못합니다. 냉장고나 에어콘은 압축기에서 압축된 냉매가 방열기를 통하고 지름이 약 0.7mm 길이가 1~2m인 모세관을 지나게 되고 이것이 증발기를 거쳐 다시 압축기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세관의 구멍크기는 샤프 연필심 굵기 정도이니 아주 가는 관(管)입니다. 사이 때 소량의 오일도 같이 돌아다닙니다.
제일 큰 문제는 압축기 압축기구에서 마모된 소량의 철분이나 아니면 생산시에 들어간 불순물 등이 돌아다니다가 모세관을 막아버리는 경우입니다. 작은 구멍이니 막혀버리기 십상이지요. 이것이 동맥경화! 이러면 냉동 불량이 됩니다. 이 불량이 발생하면 냉장고나 에어콘을 수리가 안되고 교환해줄 수밖에 없는데 시장에 깔린 수백만대의 제품을 생각하면 아찔하지요.
미국의 GE도 이 불량을 한번 당하고 압축기 사업을 철수해버렸습니다. 잭웰치 회장이 이러다가 회사 망하겠다고 생각하고 걷어치운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판매되고 GE 냉장고의 압축기는 전부 일본 마쓰시타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때는 ‘9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마쓰시타 내수 모델에서 이 불량이 터졌습니다. 압축기 종류는 로타리식이었는데, 로타리식은 관리가 더 엄격한 제품입니다. 약 40만대의 냉장고 로트가 동시에 불량을 일으켜 대단위 리콜이 벌어졌습니다. 이 리콜에 마쓰시타가 쏟아 넣은 금액은 대략 700억엔. 우리 돈으로 7000억원이었습니다. 다행히 로타리압축기는 개발 초기라 수출이 없었던 관계로 수출 불량은 없었습니다.
소형 압축기의 생산량이 전 세계 물량의 1/4을 생산하는 천하의 마쓰시타가 이게 웬일인가? 그 때 만났던 히타치 담당자 이야기가 걸작입니다.
‘마쓰시타니까 저렇게 당하고도 꺼떡없지 우리같으면 벌써 망했습니다요.’
불량 원인 의외로 간단하였습니다. 압축기 담당자가 코스트 다운을 위해 오일의 극압제(내마모제) 성분을 빼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내마모성이 떨어져 압축기 구동부의 마모된 철분이 모세관을 막아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내 인정 실험과 사내 필드테스트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실제 소비자가 냉장고 구입후 2~3년이 지나면 일제히 이 불량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때 사용한 오일이 미국계 회사인 선오일이었습니다. 선오일 담당자를 만났더니, 자기들은 마쓰시타에서 첨가제를 빼라고 해서 뺀 죄밖에 없는데, 요즘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이 때 지구 환경보호를 위해 프레온가스를 교체하는 작업이 냉동기기 메이커에서 일어납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대체 냉매의 오일은 수분흡습성이 강해서 압축기 기구부 철물에 부식을 일으키기 쉽고 따라서 불순물이 생기기 쉬웠습니다. 대체냉매용 냉장고는 모세관이 막힐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 것입니다. 이 오일의 가격은 자동차 엔진오일의 10배 가격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아주 비싼 고급 오일이지요. 냉장고 생산량만 수백만대이고 그기다 에에콘이 몇 년후 대체를 해야하고, 압축기 단품으로 수출하는 것이 수백만대... 그 불량이 터졌을 경우는 아찔합니다.
오일메이커 입장에서는 국내의 경우 일단 엘지전자에 납품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합니다. 업자들 사이에서는 엘지가 냉동기 기술력은 최고라고 보므로 엘지전자에 납품만 되면 중소메이커나 자동차회사 에어콘용으로 납품하는 것이 한결 쉽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객관적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논리이지요. 업자들 사이에서는 냉동기의 경우는 S전자보다 엘지전자를 더 쳐준답디다. 일본에서 마쓰시타에 납품하면 그 외 가전 5사에는 누워서 떡 먹기와 같은 논리였습니다.
따라서 이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오일 메이커 담당자들이 샘플을 들고 부지런히 연구실에 들락날락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의뢰한 냉동기유들이 실험실에 죽 쌓였습니다. 오일메이커는 전부 대형업체들입니다. 미국의 선오일, 듀퐁, 카스트롤, 영국의 ICI, 일본의 공동석유, 선오일저팬 등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입니다. 한국의 이수화학(박수 짝짝짝)이 굴지의 오일 메이커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엘지전자가 그렇게 냉동기유 분석 실력이 있는가? 별로 있는 것도 아니고, 히타치와 기술제휴를 하여 국내에서 제일 먼저 65년부터 냉장고를 만들어 팔아먹은 경험치 밖에 없었습니다.
‘야~ 우리가 이런 실력으로 신오일을 선택했다가는 회사 말아먹겠다. 어떻게든 오일 분석 기술을 습득하고 실험실을 새로 만들자. 이것 장난이 아니네...’
이래서 낙동강은 별별 짓을 다하게 되는데, 일단 일본의 공동석유(교세키, 共石) 연구소에 우리 연구원을 파견하여 실습을 받게합니다. 공동석유는 윤활유만 연구하는 연구소가 아예 따로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위의 조직도입니다. 실험기자재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하더군요. 나중에 당신들의 물량을 우선적으로 고려할테니 도움을 달라고 했습니다. 도움이란 우리 연구원들의 오일 분석 실습을 시키도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연구원들에게 가서 정말로 한번 배워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출장 결과를 보고서로 만들어 배포했는데 요 아래 사진입니다. 연구원들이 파견 출장을 가서, 교세키에서 행한 분석 실험 기법과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단기간에 부지런히 컨닝해서 정리했습니다. 그 보고서를 복사해서 관련자들에게 모두 1부씩 배포했습니다.
이 자료를 근거로 보니 윤활유 분석 항목은 대략 17가지(점도, 수분량, 색상, 전산가, 검화가, 요오드가, 유동점, 폴록점, 팔렉스실험, 실드튜브테스트, 오토클레이브, ICP, GPC, 가스크로마토, 페로그래프 등)가 핵심 실험 항목이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실험은 무엇일까요? 이것 말고도 여러 첨단 기기를 이용한 실험이 있습니다만 실험은 항상 기본에 충실해야겠지요. 그 실험은 요 아래에 설명한 ‘sealed tube 테스트’란 것입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압축기 구동조건과 비슷하게 시편을 만들어서, 실험실에서 간단히 실험하여 그 결과를 눈으로 직접 오일 상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오일과 금속시편의 색상을 확인하는 방법이 제일 우선입니다. 눈으로 봐서 오일이 변색이 되었으면 불량인 것이고, 변색이 없으면 양품입니다. 지난번 이준화님이 가대용으로 사용할 그리스유에서도 동판부식 실험이란 것이 나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제일 기본이자 우선입니다. 그 다음 분석기법이 동원됩니다.
그러나 이 실험의 시편 만들기도 아주 까다롭고, 실험기간이 깁니다. 약 2200시간(3개월), 섭씨 200도 조건에서 오일에다 금속시편을 넣어 방치후 확인을 하게 되는데. 튜브에 질소가스를 봉입해서 토치로 밀봉하는 작업에서 번번히 불량이 일어났습니다. 개당 600엔하는 두꺼운 파이렉스튜브를 아키하바라에 가서 수천개를 구입했으니 튜브값만 하더라도 수천만원이 날아갔습니다. 낙동강이 그 후 서울에 와서 신촌 S대학에 가서 똑같은 실험을 하려는 것을 보았는데 실험이 처음인듯하였습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이 튜브로는 택도 없습니다. 200도 온도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실험 똑 바로 해서 정확한 데이터를 논문에 게재하려면, 튜브값만 천만원 이상 날아가야할겁니다. 안 그럼 데이터를 못 잡아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대단히 숙련되어야합니다. 물론 안전에 아주 주의를 해야하고요.’
‘아이고~ 우리는 전체 프로젝트 비용이 천만원 조금 더 되요. 이거 국내에서 하는데도 없어 우리도 겨우겨우 알아내서 실험을 하려는데 초장부터 계속 불량이고, 실험의 진도가 안나갑니다.’
......................
막상 이렇게 고생하여 실험을 끝냈는데, 그 후가 더 문제였습니다. 각 회사별, 점도별 오일 색상의 유의차가 그야말로 적었습니다.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면 맑은 오일과 변색 오일의 색상이 쉽게 분간이 되었습니다만 사진을 찍으니 도저히 분간이 안되었습니다.
실험자야 어느 오일이 좋다나쁘다 직접 눈으로 보니 느낌이 오지만, 이것을 개관화할 증거물은 사진인데 이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색상 유의차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기다가 실험 로트마다 색상 편차가 조금씩 있으니 나중에 사진을 쭉 모아서 사진만으로 비교하면 품질 좋은 오일이 오히려 안좋게 보이고, 나쁜 오일이 색상이 더 좋게 보일지경이었습니다.
필름도 여러 종류를 바꾸어 찍어보고, 후라쉬도 렌즈 주둥이에 장착하는 링후라쉬를 달아서 찍어도 보고, 촬영면의 배경 색상은 교세키와 똑같이 엷은 녹색의 천을 배경으로 찍어도 보고....
낙동: 야~ 교세키도 일반카메라와 필름으로 이렇게 찍는다 했잖아~ 그런데 우리는 왜 일본애들처럼 색상의 일관성이 없는거야? 찍사 인간성 문제 때문인가?
담당자(성질 날대로 났다): 필름 현상과 인화품질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창원의 현상소가 모두 X같은 데밖에 없어서...
낙동: 그러면 서울의 충무로인가 뭐신가 그리로 한번 보내봐~ 머리는 이발하라고 있는게 아니잖아~ 머리를 좀 써봐!
이렇게하야 별별 짓을 다하는데, 충무로가 조금 더 나은듯했지만 교세키 품질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난 이노무 오일 색상에 질려버리겠어. 안되겠다. 일본에 출장가는 길에 동경에서 한번 사진을 뽑아보자. 그럼 어떻게 되는가...’
요 아래 그림은 하도 답답은 나머지, 그 당시 동경에 가서 현상 인화한 사진입니다. 이 필름은 집안 구석에 찍어, 오랫동안 쳐박아 두었던 필름을 가지고 가서 현상 인화를 했는데, 사진의 크기는 요즘은 잘 안쓰는 작은 사이즈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요? 그렇게도 안나오던사진이 동경에서 인화를 하니 월등히 선명히 나왔습니다. 요 아래 사진도 잘보면 우리 애 얼굴의 주름살까지도 선명히 나왔습니다. 그리고 색상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낙동: 아니 사진 품질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현상과 인화가 이렇게 색상 품질을 좌우하는 줄을 예전에 미쳐몰랐다.‘
...........................
이게 불과 10년전의 일인데, 지금처럼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으면 얼마나 일이 편리했을까요? 유의차도 적고, 조작도 간단하고, 파일로 바로 컴퓨터에 올릴 수도 있고....10년 세월 사이에 이렇게 변해버렸습니다.
그 후 제가 애지중지하던 제 카메라는 실험실에 기증하고 올라왔습니다. 실험자가 그 카메라에 손이 익었고, 색상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카메라를 계속 사용하는게 좋을 것같아서였습니다. 그 카메라는 니콘 F2라고 기억하는데, 좋은 카메라였습니다.
색상의 오묘조묘함....이건 단순히 필름이나 CCD의 입자수나, 감도라던지 이런 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정량적으로 잡아낼려면, 과거에 이혁기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복잡한 인자들을 퓨리에변환을 하던지하겠지요. 그렇게 해도 인간의 감성에는 부합하기 힘들겠지요.
색상...생각하면 할수록 오묘조묘한 신기루입니다.
PS: *그런데 필드스코프는 우찌해서 꽃과 새들이 이쁘게 보이는가요?
며칠전에 노목자연탐사관에 가서 필드스코프를 보니 필드스코프로 보는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쌍안경으로 보는 경치와도 다르고, 망원경으로 보는 경치와도 다른, 또 다른 멋있는 자연의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으로 꽃만 잠시 보았지만, 새를 보면 아주 이쁘게 잘 보일 것같았습니다. 지금도 이 필드스코프로 본 그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필드스코프나 쌍안경이나 보여주는 광학원리는 같으므로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실 달랐습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었습니다. 하기사 노목자연탐사관의 필드스코프는 아주 고성능이라 하므로 화질이 더 좋았을겁니다.
그러다가 그저께 니콘D100 다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처음 사진을 찍어보았는데, S2PRO와는 약간의 화질 차이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색상...이것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왜 이 놈은 보이는 광학기구에 따라 천차만별이란 말인가? 색상 과연 너는 뭐시란 말인고?
새삼 색상에 대한 괴로운 추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색상에 대해서 탐구는 별 안했지만, 애로사항을 겪어 보기로는 낙동강도 한 가락 합니다. 그래서 김세현 사장님에게도 초기 선택을 잘 하시라고 이야기한겁니다. 그럼 비 오는 늦여름날에 색상에 대한 추억을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
냉장고나 에어콘 등의 냉동 공조기기는 압축기(컴프레스)가 있고 그 안에는 모터와 냉동기용 오일이 같이 밀폐되어 들어가 있습니다. 자동차의 엔진오일은 일정 주행거리 이상이면 교환이 가능하지만, 냉동기기용 압축기는 10년이고 20년이고 못쓰게 될 때까지 오일 교환을 못합니다. 냉장고나 에어콘은 압축기에서 압축된 냉매가 방열기를 통하고 지름이 약 0.7mm 길이가 1~2m인 모세관을 지나게 되고 이것이 증발기를 거쳐 다시 압축기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세관의 구멍크기는 샤프 연필심 굵기 정도이니 아주 가는 관(管)입니다. 사이 때 소량의 오일도 같이 돌아다닙니다.
제일 큰 문제는 압축기 압축기구에서 마모된 소량의 철분이나 아니면 생산시에 들어간 불순물 등이 돌아다니다가 모세관을 막아버리는 경우입니다. 작은 구멍이니 막혀버리기 십상이지요. 이것이 동맥경화! 이러면 냉동 불량이 됩니다. 이 불량이 발생하면 냉장고나 에어콘을 수리가 안되고 교환해줄 수밖에 없는데 시장에 깔린 수백만대의 제품을 생각하면 아찔하지요.
미국의 GE도 이 불량을 한번 당하고 압축기 사업을 철수해버렸습니다. 잭웰치 회장이 이러다가 회사 망하겠다고 생각하고 걷어치운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판매되고 GE 냉장고의 압축기는 전부 일본 마쓰시타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때는 ‘9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마쓰시타 내수 모델에서 이 불량이 터졌습니다. 압축기 종류는 로타리식이었는데, 로타리식은 관리가 더 엄격한 제품입니다. 약 40만대의 냉장고 로트가 동시에 불량을 일으켜 대단위 리콜이 벌어졌습니다. 이 리콜에 마쓰시타가 쏟아 넣은 금액은 대략 700억엔. 우리 돈으로 7000억원이었습니다. 다행히 로타리압축기는 개발 초기라 수출이 없었던 관계로 수출 불량은 없었습니다.
소형 압축기의 생산량이 전 세계 물량의 1/4을 생산하는 천하의 마쓰시타가 이게 웬일인가? 그 때 만났던 히타치 담당자 이야기가 걸작입니다.
‘마쓰시타니까 저렇게 당하고도 꺼떡없지 우리같으면 벌써 망했습니다요.’
불량 원인 의외로 간단하였습니다. 압축기 담당자가 코스트 다운을 위해 오일의 극압제(내마모제) 성분을 빼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내마모성이 떨어져 압축기 구동부의 마모된 철분이 모세관을 막아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내 인정 실험과 사내 필드테스트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실제 소비자가 냉장고 구입후 2~3년이 지나면 일제히 이 불량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때 사용한 오일이 미국계 회사인 선오일이었습니다. 선오일 담당자를 만났더니, 자기들은 마쓰시타에서 첨가제를 빼라고 해서 뺀 죄밖에 없는데, 요즘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이 때 지구 환경보호를 위해 프레온가스를 교체하는 작업이 냉동기기 메이커에서 일어납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대체 냉매의 오일은 수분흡습성이 강해서 압축기 기구부 철물에 부식을 일으키기 쉽고 따라서 불순물이 생기기 쉬웠습니다. 대체냉매용 냉장고는 모세관이 막힐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 것입니다. 이 오일의 가격은 자동차 엔진오일의 10배 가격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아주 비싼 고급 오일이지요. 냉장고 생산량만 수백만대이고 그기다 에에콘이 몇 년후 대체를 해야하고, 압축기 단품으로 수출하는 것이 수백만대... 그 불량이 터졌을 경우는 아찔합니다.
오일메이커 입장에서는 국내의 경우 일단 엘지전자에 납품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합니다. 업자들 사이에서는 엘지가 냉동기 기술력은 최고라고 보므로 엘지전자에 납품만 되면 중소메이커나 자동차회사 에어콘용으로 납품하는 것이 한결 쉽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객관적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논리이지요. 업자들 사이에서는 냉동기의 경우는 S전자보다 엘지전자를 더 쳐준답디다. 일본에서 마쓰시타에 납품하면 그 외 가전 5사에는 누워서 떡 먹기와 같은 논리였습니다.
따라서 이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오일 메이커 담당자들이 샘플을 들고 부지런히 연구실에 들락날락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의뢰한 냉동기유들이 실험실에 죽 쌓였습니다. 오일메이커는 전부 대형업체들입니다. 미국의 선오일, 듀퐁, 카스트롤, 영국의 ICI, 일본의 공동석유, 선오일저팬 등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입니다. 한국의 이수화학(박수 짝짝짝)이 굴지의 오일 메이커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엘지전자가 그렇게 냉동기유 분석 실력이 있는가? 별로 있는 것도 아니고, 히타치와 기술제휴를 하여 국내에서 제일 먼저 65년부터 냉장고를 만들어 팔아먹은 경험치 밖에 없었습니다.
‘야~ 우리가 이런 실력으로 신오일을 선택했다가는 회사 말아먹겠다. 어떻게든 오일 분석 기술을 습득하고 실험실을 새로 만들자. 이것 장난이 아니네...’
이래서 낙동강은 별별 짓을 다하게 되는데, 일단 일본의 공동석유(교세키, 共石) 연구소에 우리 연구원을 파견하여 실습을 받게합니다. 공동석유는 윤활유만 연구하는 연구소가 아예 따로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위의 조직도입니다. 실험기자재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하더군요. 나중에 당신들의 물량을 우선적으로 고려할테니 도움을 달라고 했습니다. 도움이란 우리 연구원들의 오일 분석 실습을 시키도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연구원들에게 가서 정말로 한번 배워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출장 결과를 보고서로 만들어 배포했는데 요 아래 사진입니다. 연구원들이 파견 출장을 가서, 교세키에서 행한 분석 실험 기법과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단기간에 부지런히 컨닝해서 정리했습니다. 그 보고서를 복사해서 관련자들에게 모두 1부씩 배포했습니다.
이 자료를 근거로 보니 윤활유 분석 항목은 대략 17가지(점도, 수분량, 색상, 전산가, 검화가, 요오드가, 유동점, 폴록점, 팔렉스실험, 실드튜브테스트, 오토클레이브, ICP, GPC, 가스크로마토, 페로그래프 등)가 핵심 실험 항목이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실험은 무엇일까요? 이것 말고도 여러 첨단 기기를 이용한 실험이 있습니다만 실험은 항상 기본에 충실해야겠지요. 그 실험은 요 아래에 설명한 ‘sealed tube 테스트’란 것입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압축기 구동조건과 비슷하게 시편을 만들어서, 실험실에서 간단히 실험하여 그 결과를 눈으로 직접 오일 상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즉 오일과 금속시편의 색상을 확인하는 방법이 제일 우선입니다. 눈으로 봐서 오일이 변색이 되었으면 불량인 것이고, 변색이 없으면 양품입니다. 지난번 이준화님이 가대용으로 사용할 그리스유에서도 동판부식 실험이란 것이 나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제일 기본이자 우선입니다. 그 다음 분석기법이 동원됩니다.
그러나 이 실험의 시편 만들기도 아주 까다롭고, 실험기간이 깁니다. 약 2200시간(3개월), 섭씨 200도 조건에서 오일에다 금속시편을 넣어 방치후 확인을 하게 되는데. 튜브에 질소가스를 봉입해서 토치로 밀봉하는 작업에서 번번히 불량이 일어났습니다. 개당 600엔하는 두꺼운 파이렉스튜브를 아키하바라에 가서 수천개를 구입했으니 튜브값만 하더라도 수천만원이 날아갔습니다. 낙동강이 그 후 서울에 와서 신촌 S대학에 가서 똑같은 실험을 하려는 것을 보았는데 실험이 처음인듯하였습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이 튜브로는 택도 없습니다. 200도 온도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실험 똑 바로 해서 정확한 데이터를 논문에 게재하려면, 튜브값만 천만원 이상 날아가야할겁니다. 안 그럼 데이터를 못 잡아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대단히 숙련되어야합니다. 물론 안전에 아주 주의를 해야하고요.’
‘아이고~ 우리는 전체 프로젝트 비용이 천만원 조금 더 되요. 이거 국내에서 하는데도 없어 우리도 겨우겨우 알아내서 실험을 하려는데 초장부터 계속 불량이고, 실험의 진도가 안나갑니다.’
......................
막상 이렇게 고생하여 실험을 끝냈는데, 그 후가 더 문제였습니다. 각 회사별, 점도별 오일 색상의 유의차가 그야말로 적었습니다.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면 맑은 오일과 변색 오일의 색상이 쉽게 분간이 되었습니다만 사진을 찍으니 도저히 분간이 안되었습니다.
실험자야 어느 오일이 좋다나쁘다 직접 눈으로 보니 느낌이 오지만, 이것을 개관화할 증거물은 사진인데 이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색상 유의차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기다가 실험 로트마다 색상 편차가 조금씩 있으니 나중에 사진을 쭉 모아서 사진만으로 비교하면 품질 좋은 오일이 오히려 안좋게 보이고, 나쁜 오일이 색상이 더 좋게 보일지경이었습니다.
필름도 여러 종류를 바꾸어 찍어보고, 후라쉬도 렌즈 주둥이에 장착하는 링후라쉬를 달아서 찍어도 보고, 촬영면의 배경 색상은 교세키와 똑같이 엷은 녹색의 천을 배경으로 찍어도 보고....
낙동: 야~ 교세키도 일반카메라와 필름으로 이렇게 찍는다 했잖아~ 그런데 우리는 왜 일본애들처럼 색상의 일관성이 없는거야? 찍사 인간성 문제 때문인가?
담당자(성질 날대로 났다): 필름 현상과 인화품질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창원의 현상소가 모두 X같은 데밖에 없어서...
낙동: 그러면 서울의 충무로인가 뭐신가 그리로 한번 보내봐~ 머리는 이발하라고 있는게 아니잖아~ 머리를 좀 써봐!
이렇게하야 별별 짓을 다하는데, 충무로가 조금 더 나은듯했지만 교세키 품질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난 이노무 오일 색상에 질려버리겠어. 안되겠다. 일본에 출장가는 길에 동경에서 한번 사진을 뽑아보자. 그럼 어떻게 되는가...’
요 아래 그림은 하도 답답은 나머지, 그 당시 동경에 가서 현상 인화한 사진입니다. 이 필름은 집안 구석에 찍어, 오랫동안 쳐박아 두었던 필름을 가지고 가서 현상 인화를 했는데, 사진의 크기는 요즘은 잘 안쓰는 작은 사이즈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요? 그렇게도 안나오던사진이 동경에서 인화를 하니 월등히 선명히 나왔습니다. 요 아래 사진도 잘보면 우리 애 얼굴의 주름살까지도 선명히 나왔습니다. 그리고 색상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낙동: 아니 사진 품질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현상과 인화가 이렇게 색상 품질을 좌우하는 줄을 예전에 미쳐몰랐다.‘
...........................
이게 불과 10년전의 일인데, 지금처럼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으면 얼마나 일이 편리했을까요? 유의차도 적고, 조작도 간단하고, 파일로 바로 컴퓨터에 올릴 수도 있고....10년 세월 사이에 이렇게 변해버렸습니다.
그 후 제가 애지중지하던 제 카메라는 실험실에 기증하고 올라왔습니다. 실험자가 그 카메라에 손이 익었고, 색상 품질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카메라를 계속 사용하는게 좋을 것같아서였습니다. 그 카메라는 니콘 F2라고 기억하는데, 좋은 카메라였습니다.
색상의 오묘조묘함....이건 단순히 필름이나 CCD의 입자수나, 감도라던지 이런 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정량적으로 잡아낼려면, 과거에 이혁기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복잡한 인자들을 퓨리에변환을 하던지하겠지요. 그렇게 해도 인간의 감성에는 부합하기 힘들겠지요.
색상...생각하면 할수록 오묘조묘한 신기루입니다.
PS: *그런데 필드스코프는 우찌해서 꽃과 새들이 이쁘게 보이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