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뒷산에 올라가보았습니다. 7년간 살았던 과천이 저 멀리 코딱지만하게 보이고 희미하게 서울의 강남 지역 빌딩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여기서 강남의 양재까지 거리가 직선으로 10km 남짓 될 듯합니다.
제 고향 울산에 가면 치술령 고개라는 높은 고개가 있는데, 그 고개 꼭대기에는 망부석이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이 바위에서 동해안 바닷가까지는 직선거리로 3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옛날 먼 옛날....
박혁거세의 후손이었던 충신 박제상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일본에 갔으나 계획이 탄로되어 불에 태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치술령 고개에 올라 남편이 돌아오는 동해를 바라만 보다가 죽어 망부석이 되었고, 그의 영혼은 새가 되어 그 근처 은을암 골짜기에 숨었습니다.
제 초등학교시절의 교가를 보면...
♬은을암 심산저두 병풍을 삼고/ 태화강 흘려내려 염포에게로...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은을암은 골짜기가 깊은 산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깊은 골짜기이냐하면 우리 아부지 말씀에 의하면 젊은 시절 나무를 하고 그 골짜기를 넘어오다가 호랑이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저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이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망부석이 있는 치술령 고개의 바로 산밑의 마을의 이름은 ‘숲안’이라는 곳인데, 제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고 자란 곳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살아 생전에 동네 이웃 사람들이 ‘숲안댁’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우리 마누라 처녀시절에 끈질기게 따라오는 총각이 있었는데, 어느 겨울 하루 집앞까지 따라와서 사귀겠다는 확답을 듣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여자집 앞에서 보초를 섰다고합니다. 하기사 여자가 꼬리를 쳤으니까, 가능성이 있다싶다니까 그렇겠지요. 안쏜 카빈에서 탄피가 나겠습니까? 안그럼 추운 겨울밤에 미쳤다고 남의 대문 앞에서 오들들 떨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하여 새벽 네시가 되어 나가보니 아직도 그 자리에 오들들 떨면서 서있더라합니다.
‘아니 집에 안가고 이렇게 떨고 서있으면 어떡해요? 우리집에 들어와서 몸녹이다 돌아가세요. 짝사랑에 동사(凍死)했다고 신문에 나겠습니다.’
‘저는 XX씨가 사귀겠다는 허락을 안하면 이 자리에서 ’망부석‘이 될려고 작정했습니다.’
이 ‘망부석’이란 용어에 한마디에 감동 먹은 이 여편네는 그 뒤 이 총각과같이 산으로 들로 놀러다니면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다보니 인생을 쫄딱 망치게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망부석...
과연 이 인간이 망부석이 무엇인지는 알고서 감동을 먹었단 말인가? 그 말에 감동 먹는다면 난 망부석 정기를 타고난 사람인데, 나를 만났으니 뿅 가겠네 그려~~
그런데 옛날에는 이 치술령 고개에서 동해 바다가 보였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바다가 보였기에 이런 전설이 나왔다고 봐야하는데, 옛날에는 엄청 시잉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력이 2.0인 사람은 달의 분화구가 맨눈으로 보여야 정상입니다. 큰 분화구의 시직경을 따져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시력 2.0인 사람은 아직도 많지만 맨눈으로 분화구를 보았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분화구를 보았다고하므로, 산업화시대가 들어선 20세기 이후 확실히 대기가 탁해졌다는 증거라하겠습니다.
옛날 이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인왕산에 올라가서 한양 벌판을 내려다 보았음에 틀림이 없을건데, 아파트가 없고 공기가 맑았던 그 때의 서울 모습을 상상해보면 정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자리였다 보여집니다. 저 멀리 서쪽에서는 푸른 바다가 보였을 것이고, 남쪽에는 관악산이 바람막이를 해주고...이성계가 한양이 오늘날 이런 모습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