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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16 10:12

여자의 일생

(*.100.197.215) 조회 수 219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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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

내 나이 1살...
6남 3녀의 7번째로 태어났다. 럭키세븐! 한 칸 위에 오빠, 두 칸 위에 언니, 그 위의 기수들은 이름 외우기도 벅차다. 부모님은 무슨 X배짱으로 이렇게 줄줄히 생산하셨을까? 이런 바글바글 집안에서 내 육군정량이나 제대로 찾아먹을 수 있을까? 앞날이 캄캄하다. 엄마가 옆집 아줌마와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가진 것도 없는 집안에 이렇게 애들만 줄줄이 낳아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이중에서 한 놈이라도 출세하면 그 덕에 살아가는거지요.’

정말로 가족계획의 개념이라고는 모른다. 약국에 가면 피임기구도 많이 파는데...

엄마 뱃속에 들어있는 동생도 불쌍하고, 또 태어날 막내도 불쌍할 뿐이다.


내 나이 6살....
웬 청년이 나를 놀리고, 징그럽게 다가온다. 아무리 싫다해도 막무가내로 횡포를 부린다. 앙탈을 부려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가정 성희롱! 알고 보니 그 남자는 큰 오빠였다. 남들이 보면 아빠와 딸 사이라할지도 모르겠다. 동네 창피다.


내 나이 10살...
이제 본격적으로 가정내 동족상쟁, 적자생존의 피튀는 서바이벌게임이 시작되었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내 것부터 챙겨야 살아갈 수있다. 도와줄X 한X도 없다. 일단 한 칸 위 오빠와는 싸움에서 지면 안된다. 난 깡다구로 싸웠다. 믿을 것은 오직 깡다구뿐이다. 오직 깡만이 내 생활 신조이다. 물론 두 칸 위 언니에게도 양보는 없다. 한번 양보는 영원한 양보로 이어진다. 우리집에서는 서열 나이 따지면 머리 아프다. 그럼 나에게 돌아오는 것 하나도 없다. 엄마가 얘기하신다.

‘이 치마 네 언니가 입던 건데, 깨끗하니 네가 입어라.’

‘엄마! 내가 자라면 시집도 언니와 결혼한 형부하고 해야하나요? 나도 새옷 한번 입어 볼 수있도록 해줘요!’


내 나이 15살...
이제 중학 3학년이다. 어느덧 나는 우리집에 아무도 못말리는 깡패가 되어있었다. 즉 난 우리집에서 하리마후가 되어있었다. 이제 이 집에는 큰 오빠고 뭣이고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까불다간 본전건질 생각을 말아야된다. 반면에 언니는 여성스럽다. 자이안트의 제임스딘 사진도 오려 책갈피에 넣고, 자기 물건은 깔끔하게 챙긴다. 언니는 야간중학교를 다녔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일반여고의 장학생이 되어 집안의 부담을 덜었다.

언니 물건은 내 것이고 내 물건은 내 것이다. 오늘은 언니 스타킹을 몰래 신고 학교에 왔다. 스타킹도 하나 못사주면서 나를 왜 낳았노? 입에서 시바시바~ 욕이 절로 나왔다.

첫시간 수업이 시작되기 전, 창문가로 화가 난 언니 얼굴이 보였다. 씩씩거리면서 소리지른다.

‘너, 스타킹 지금 벗어!’

학교 지각을 감수하고 스타킹을 찾으러 온 것이다.

지독한 뇬!


내 나이 18살....
방년 18세, 고등학교 3학년이다. 학교 독일어 쌤이 갑자기 남자처럼 보인다. 가슴속에 메아리치는 연분홍사랑...드디어 내 가슴에도 봄은 오고야말았다. 나의 짝사랑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 걸려온 전화...그 남자는 다름 아닌 총각 영어쌤이었다. 좀 실망이 되었지만 만나자는 장소로 나갔다. 만나서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졸업하고서 다시 만나자’는 것과 그 쌤이 내 손을 잡았다는 사실. 그리고 손잡고 한참 걸었다는 사실.

다음 날부터, 학교에 가서는 공부가 되질 않았다. 샘을 봐도 얼굴만 화끈거린다. 남들은 입시준비에 한참인데...난 뭐람? 나만큼 뒤로 호박씨 까는 여학생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내 나이 19세...
그럭저럭 교육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생이 되었다. 엄마가 대학에 보낼 형편이 못 된다고, 담임쌤과 상의를 할 때 나와 담임쌤이 울고불고하여 등록금이 거의 없는 교육대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첫미팅이 있는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방엘 갔다. 저 멀리 허우대 멀쩡한 녀석이 있다. 저 녀석과 파트너가 되면 좋겠는데...결과는 역시나였다. 니주구리송판같은 녀석과 파트너가 된 것이다. 첫미팅이 너무 실망스럽다.

연이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100번째 미팅 결과는 모두 그 놈이 그놈이었다. 아~ 잘생기고 돈많고 능력있고 나에게 잘해주는 총각은 과연 없는 것일까? 과연 똘똘한 남정네 하나 사귀는 것이 이렇게 힘든것인가? 미팅에 대한 회의론이 들기 시작한다.

오늘도 교문 앞에는 지난번에 미팅한 녀석이 또 보초를 서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무려 6개월을 학교 앞에서 보초를 선다. 이제까지 기록 중에서 최고 기록이다. 친구가 나가서 확인을 하고 담을 할 수없이 담을 뛰어넘어 집에 왔다.

아, 그리고 고등학교 영어쌤에게서 몇 번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이제 남자들이 지겹다 지겨워~


내 나이 20세...
이제 올해로 대학생활은 끝이다. 미팅하다 보낸 세월, 학교 공부도 잘될리 없었다. 한칸 위 오빠 군대 면회갔다가 군바리 한 놈에게서 편지가 왔다. 이 남정네는 정말로 끈질겼다. 이 사연은 너무 길어 생략하련다.

시골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광해도 없고 하늘의 별도 잘 보였다. 혼자만의 생활이 외로웠다. 돕소니언 망원경이나 자작해서 별이나 볼까? 여러 생각이 다든다.


내 나이 21세...
한칸 위 오빠 자취집에 반찬갖다주러갔다. 한 놈상이 들어왔다. 전혀 처음 보는 놈상이었다. 삐리삐리하게 보인다. 이제까지 미팅했던 놈상보다도 화질이 떨어지는 사양이다. 그냥 멋도 모르고 만난 것이다. 오빠와 몇마디 말만 하더니 나갔다. 오빠 말로는 고등학교 동기인데 요 막다른 골목 하숙집에서 하숙을 하는 친구라고한다.  

‘그런데 저 놈상하고 결혼하는 것은 아니야?’

별 해괴망측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이 놈상하고 사건은 터진다. 영화를 보지 말았어야하는데...촌시러워도 이렇게 촌시러운 놈상은 생전에 처음 봤다.

‘저 하숙집 내 방에 미숫가루 있는데 타먹으로 갈래요?’


내 나이43세...
지금 내 나이다. 생각해보니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생각이 절로절로 든다. 이제는 나를 따라오는 남정네는 없다. 내가 따라가야할 판이다. 무지 서럽다. 그기다가 남편도 한번씩 서럼준다. 앞으로는 더 서러울건데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자업자득인 것을...다시 태어난다면 모든 남정네들을 울리지 않으리.....젊은시절 경부선을 타고 오리락내리락했던 낙동강 석양빛이 선하게 떠오른다.

낙동강 강바람이 앞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가슴 물결이 이네.....낙동강 강 바람이 내 얼굴을 만지면/ 분홍빛 두 얼굴이 수줍어지네.......

  • 최승용 2003.06.16 10:58 (*.98.182.246)
    한탄녀 = 낙동강(?)
    실명이면 더욱 좋았을 것 같습니다.^^
  • 황인준 2003.06.16 11:21 (*.118.18.13)
    그런가요?
    글 쓰시는 솜씨가 대단하시군요.
    아무래도 개발자 보다는 문과 선택해서 창작쪽 일을 하셨으면 어떠했을까 싶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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