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by 박병우 posted Jun 0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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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며칠 전에 탈북한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 어머니를 두고 동생과 탈북했습니다. 중국에서 모진 고생을 하다가 한국으로 밀입국했다합니다. 한국으로 탈북 당시 중국에서 아버지가 별세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몰래 다시 북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고 하더군요. 한국으로 밀입과 아버지 죽음을 맞바꾼 것입니다. 어머니를 집에 두고 동생과 한국으로 오기로 작정하고 밀항선을 타고 홍도로 밀입국했습니다.    

밀입국하면서 일체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있다고합니다. 북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해서 입니다. 지금도 어머니와는 서신교환이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한국돈으로 10만원 정도이면 고향에 있는 또 다른 동생과 어머니가 일년을 먹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북한으로 왕래하는 중국 교포를 통하여 어머니께 돈을 보내고 있다고 하더군요. 얼마전에 중국으로 가서 두만강 건너편에 서있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왔다고합니다. 미리 강건너서나마 어머니 모습을 보고 싶어 사전에 나오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찍었는데 확대를 해도 어머니 모습은 나타나지 않아서 너무나 아쉽다고 했습니다.  

‘나는 천체 관망이 취미이거든. 북한은 하늘 맑지?’

‘그기는 정말로 하늘이 맑습네다. 대낮에도 별이 보입네다. 밤하늘에는 별이 너무 많습네다. 서울와서는 별을 똑 바로 본적이 없습니다.’

이 친구는 아마도 금성을 보았던 듯합니다.

‘XX군, 통일이 되면 너도 고향에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오고, 나는 개마고원에 가서 망원경을 설치해서 하늘 한번 볼란다.’

‘예 이건 기대해도 좋습네다. 아니면 우리 집에 가도 됩니다.’

분단 60년...삶의 방식은 판이하게 다르게 살아왔지만 같은 민족의 핏줄이란 것은 금방 확인할 수 있더군요. 젊은 친구의 이야기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식량이 모자라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이야기는 언론보도로 듣는 것보다 더 생생했습니다.

‘지금 중국 동포들은 남한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습네다. 남한이 엄청 발전했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요. 북한사람들도 한국이 잘 산다는 것은 말은 못하지만 다 압니다. 중국동포들은 박대통령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하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박대통령이 독재자라고 욕을 하더군요. 김일성이는 독재를 해서 인민들을 굶어죽고 있는데도 욕을 못하는데, 박대통령은 이렇게 살게 해주었는데도 욕을 들어먹는게 이상합네다.’  

인구는 많고 자원 하나 안 나는 우리나라. 이 친구 말을 들어보니 우리가 어렵던 시절은  잊어버리고 지금의 잣대로서 박대통령을 폄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서 ‘박정희 목 따러 왔수다’라면서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했던 시절에 실미도사건이 일어났는데, 영화를 보면 그 내용은 우리 정부의 비인도적인 면만 부각시킨다고 합니다. 안봐서 모르지만요.    

제가 주장하는 것은 독재이론을 합리화시켜주자는 것이 아니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자입니다.

요즘 서울대폐지론이 나온답니다. 저는 서울대를 나온 사람도 아니고 연대, 고대를 나온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초등~대학까지 전부 국공립으로 다녔고 과외 한번 받아 본적도 없습니다.  

자원 하나 안나는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를 폐지해서 어쩌자는 것입니까요?
IT 분야의 사업을 하시는 별친구 김모씨의 말씀

김세: 서울공대는 전 학년 학비를 무료로 하고, 병역면제를 시켜야지...IT 산업에서는 천재들이 올리는 부가가치는 절대적입니다. 범인(凡人)들이 한달 걸려 짜는 프로그램을 하룻만에 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돈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합니다. 중국의 청화대학 공대를 한번 보십시오.

이 말에 여러 가지가 떠 올랐습니다. 작게는 에어리디스크를 알고 싶어도 쉽게 접근이 안되고, 크게는 과거에 기술사항을 알고 싶어도 어디에 물어볼데가 없어 헤매이던 일까지. 타는 목마름에 얼마나 뒷북치면서 헤메었던가! 기술을 훔칠려고 비자금 예산 1억원을 확보해서 M사 담담자에 접근할려고 일본서 공부한 동서까지 동원시켜 전화를 하고 난리를 친 적도 있었습니다. 낙동강에게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게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오죽했으면 국제산업스파이를 할려고 했겠습니까. 생산하는 제품이 세계와 경쟁을 해야하므로 0.1%라도 따라 잡을 것은 잡아야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는 것도 없고, 쳐다볼데는 벽밖에 없었던 괴로웠던 시절이여~~

서울대 법대나 상과대 등은 모르겠으나 공대, 자연계는 키워줘야합니다. 키워주고 야단을 쳐야지, 키울 생각은 안하고 없애자라는 말은 되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술 개발에 평준화라는 말은 없기 때문입니다.  
...............

헤어지고 오면서 북한 영상 가요 비디오를 얻어 왔습니다. 화질은 별로지만 나오는 가수는 완전히 자세 나옵니다. 아마도 이 가수가 남한에 있다면 대전 최총각 잠도 못자지 싶습니다. 또 창우총각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같습니다. 장가 가는 것 포기했다고 했지만. 남자의 변덕은 말릴 수 없어라~~

창우총각 걱정말어~ 내 한명 키우고 있다. 천안의 다민이 20년 후에는 이렇게 된다. 다민이 엄마는 이 노래를 들으시고 다민에게 한복을 입혀 연습시켜 다음 천문인마을에 와서 위문공연 한번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