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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5 23:17

기러기

(*.79.196.166) 조회 수 1806 추천 수 36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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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여러분~ 달빛이 내리는 밤에 하늘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 모습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실물은 보지는 못했어도, 밤이면 군용담요 펴놓고 동양화 감상하면서 많이 보았을겁니다. 기러기는 가을이면 날아와서 겨울에 우리나라에서 보내다가 날이 풀리면 어디론가로 또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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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는 오리와 같은 종류이므로 야행성 조류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공산명월에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기러기는 날 때 반드시 V자 대형으로 줄지어며 날아갑니다. 그 이유는 제일 앞의 기러기의 날개짓의 양력(揚力, 뜨는 힘)을 받아서 뒤에 있는 기러기들이 날기 쉽게하기 위함이랍니다. 북쪽의 툰드라지대에서 수천km를 날아서 오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어떻게 하던 에너지를 아껴야합니다. 그러므로 V자 대형을 그리므로서 뒷 기러기들은 날개짓을 작게해서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날아갈 수 있습니다. 앞 기러기들이 힘이 빠지면 뒷 기러기들과 위치를 바꾸며 비행합니다. 이리하하여 서로서로 에너지를 나누어 소모하면서 머나먼 거리를 날아가는 것입니다. 기러기는 대단히 예민하여 사람이 몇 백미터만 접근해도 몇 마리가 고개를 들고 안테나를 세우더군요. 몇 마리가 땅을 이륙하면 수천마리가 연쇄 작용으로 날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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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는 대단히 팀워크가 좋아서 마지막 주자가 이륙할 때까지, 선두주자가 기다려서 최종 마릿수를 확인하고 날아갑니다. 즉 인원파악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러기도 이러한데, 이라크의 우리 국민은 남의 나라 신문사가 실종되었다고 신고를 해줘도 외교부 담당자는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어쩔 수가 없어 겨우 실토를 했다는군요. 그러므로 외교부 사람들은 기러기보다 못한 사람들이지요. 오늘 저녁 테리비에 나오는 외교부 장관을 보니 꼴보기 싫어 죽겠습디다.  외무고시 쳐서 합격하면 뭐합니까. 하는 꼴이 원숭이 꼴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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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겨울 보리밭에 기러기 떼가 날아들면 보리밭을 작살을 내버렸습니다. 뿌리고 잎이고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니까요. 그러나 이제 공산명월에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도 보기 힘들어졌고, 보리밭에 앉아 있는 기러기 모습도 전설이 되었습니다(보리 농사를 안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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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5년 시절에 추석전날 어머니와 같이 시내 시장에 가서 새옷을 사서 들판을 걸어올 때, 보름달 아래로 기러기가 흑빛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추석이면 초가을이나 중간 가을인데, 이 때 벌써 기러기가 날아왔다는 이야기이지요. 또 90년대 초반에 미국의 중부 지방에 가서 달빛 하늘아래 기러기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기러기인지 다른 오리류인지는 모르겠으나). 날은 추운데 기러기들이 날아가는 모습은 아주 친숙한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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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노래는 제가 중학교 2학년 시절에 히트를 쳤던 기러기 노래입니다. 맹인가수 이용복이 불렀습니다. 이런 노래가 힛트를 쳤다함은 그 당시만 해도 기러기가 전국에 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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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윗 그림은 작년 겨울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찍은 쇠기러기 모습입니다. 아래 그림은 천문인마을에 가는 삼형제바위 위에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입니다. 동양화 분위기가 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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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줄지어 울고 간 하늘에/ 조각구름 어데론가 흘러서 가네/ 손목을 잡고 낙엽 쌓인 벤치에서/ 사랑을 가르쳐주던 우리 님은 구름같이/ 흘러갔나 날러갔나 기러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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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용 2004.06.26 00:00 (*.255.167.26)
    일 때문에 한탄강쪽 서부전선(?) 철책선에 가 본적이 있읍니다. 추수가 끝나고 텅빈 벌판엔 온통 기러기떼들이 날아오고 날아가던 풍경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망보는 기러기가 있는데 그놈은 먹이를 먹지도 않고 고개를 고추세우고 망을 보다가 제가 다가가려 폼을 잡으면 꽤액 소리쳐 친구들에게 알려주더군요.
    그리곤 대장 기러기가 날고 뒤따라 행동을 같이 하는 한 떼의 기러기들이 날개을 쳐서 날아오르고..
    보초서면서 라면 끓여먹던 저보다 기러기의 충실 함에 부끄러움을 느꼈더랬습니다.^^
  • 추현석 2004.06.26 01:39 (*.242.81.186)
    저는 운이 좋아 아파트 가까이에 안양천과 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자연히 오리랑 기러기 때들이 아파트 단지 위를 날라 가곤 하지요.
    아파트 앞 소나무 동산서 한참 별을 보다 보면 끼륵 끼륵 하는 소리와 함께 기러기때들이 망원경렌즈안에 잡힌 답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날개짓에 달빛이 반사되어 금가루를 뿌리는듯 눈부실 때가 있습니다.
    한동안 기러기때를 쫓아 망원경을 돌리다 보면 저 멀리 사라지지요.

    미처 고배율의 아이피스 갈아낄 시간마저 주질 않더군요~~~
  • 박병우 2004.06.26 08:09 (*.79.196.166)
    세상에 보초를 서면서 라면을 끓여먹는 이런 군대가 있었습니까?
    .
    우리는 보초를 서면서 담벼락에 배치붙어 스레트집 지붕위에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1분 쯤 지나면 담넘어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밉니다.
    .
    '뭐 끓여줄껴?'
    .
    '라면 두개요~'
    .
    10분 뒤 라면이 담넘어 배달되면 1분안에 먹어치웠습니다. 절대로 스스로 끓여먹지 않았습니다.
  • 추현석 2004.06.26 09:48 (*.40.79.136)
    흐 흐 흐....
    담볔에 붙어서 라면을 먹을수 있는 군대는 양반군대 입니다.
    저는 산꼴짝의 최전방이라 스스로 끓여 먹어야 했지요.
    그때 소위 말하는 딸딸이라는 유선 전화기가 초소마다 설치 되어 있어 소대장실과 연결 되어 있고,
    소대장실의 전화기는 성능이 좋은 것이었지요.
    거기에다 청계천에서 주어온 증폭기를 붙여 놓으면 소초에서 하는 말이 다 들립니다.
    "어이, 김이병, 묵으라, 묵으라, 왜 맛없냐?"
    아마 고참의 눈치를 보느라 반합따까리속의 라면에 나뭇가지 꺾어 만든 젓가락이 들어가질 못했나 봅니다~~.
    이티 소대장은 다 알면서 모른척 하지요.
    소대장도 당번병이 끓여온 라면을 먹으면서 우리나라 최전방의 밤을 라면으로 지세운답니다.


    첨언 : 그 당시 소위 고참 및 간부들간에 유행한 비엔나 라면이 있었지요.
    고기를 몇점 넣어 끓인것인데, 나중에 보니 까마귀고기였습니다.
    짠밥 버린곳이 사냥터였지요. 덧 하나 설치해 놓으면 온갖 동물들이 다 잡히고~~~
    덕분에 저도 천연기념물 수가지 맛 보았지요.
    지금도 깜빡 깜박 하는 것이 군대 라면 탓인가 봅니다.
    아줌마가 해주는 라면에는 까마귀고기는 없었겠지요~~~~
  • 남명도 2004.06.26 10:06 (*.50.225.139)
    전혀 엉뚱한 말입니다만. 몇 일 전에 성현이 사진찍어준다고 집사람과 동네에서 사진을 찍는데 비둘기가 제 머리위에 응가하고 가더군요...기막혀서...
  • 박병우 2004.06.26 19:11 (*.79.196.166)
    이왕 빠지는 삼천포인데 확 빠져버립시다.
    .
    군대라면은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같은 삼양라면이라도 사제(私製)라면이 맛있다 이겁니다. 아마도 스프에 넣는 원료가 군용은 좀 삐리리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군용라면보다 보초서면서 담벼락 넘어 있는 민가에 라면을 시켜먹었습니다.
    .
    우리 부대는 공수부대인지라 돈이 많았지요. 비행기에서 한번씩 뛰어내리면 모가지(생명) 수당을 6천원이나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달에 두 번 뛰어내리면 거금 1만2천원원(X달러)!!! 사병 월급이 3천8백원(2천8백원?)이었던 시절이니, 월매나 이 돈이 많은 금액인지 알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제가 입대가 조금 지나고 현업에 일할 무렵부터는 육군 공수부대장 출신인 전두환이가 집권을 하는 바람에 해병 포항1사단 73공수대대는 훈련만 X나게 받고 ‘짬프’는 연중행사로 한두번 C123 수송기를 타고 하는 신세로 전락했지요. 전두환이는 해병대가 뱅기타고 짬프를 하는 것이 보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박통 시절에는 한달에 한두번은 꼬박꼬박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우리 대대는 거의 전설적인 호경기를 누렸다고 고참들이 이야기했습니다.
    .
    전두환이는 해병대 기를 죽이기 위해 군복도 바꾸어버렸습니다. 제가 복무할 무렵에는 약간 옆은 국방색 군복이었는데, 이것을 칼다림질을 하고 팔각모를 쓰고 휴가를 갔습니다. 그러다가 제대할 무렵에는 팔각모도 아닌 좀 둥그란 모자가 지급되었고 옷도 좀 이상한 옷이 나오더군요. 요즘도 이런 군복을 입은 해병대 군인들을 봅니다. 물론 훈련 때는 그 때나 지금이나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습니다. 요즘은 이런 얼룩무늬 옷을 입는 군인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
    .
    우찌됬던 우리 대대 군바리들은 과거의 호경기를 못 잊어 사제라면에 입이 익어버렸습니다. 돈도 없는 주제에 감히 사제(私製) 라면이라니... 그기다가 라면의 핵심인 계란까지 넣은 사제라면을 못 잊고 있다니...
    .
    우리는 담넘어 사제 라면을 만들어 파는 아줌마를 백XX 아줌마라고 불렀습니다만 실제로 백XX 아줌마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본 적이 없으므로...
    .
    대대장이 몇 번이나 주의를 주기도 했습니다.
    .
    ‘앞으로 보초를 서면서 ‘백XX 아줌마'집에서 라면을 시켜 먹는 놈은 2박3일 군기교육을 보낼껴~ 그래도 또 걸리면 영창 일주일 보낼껴~ 그래도 말을 안들으면 영창 한달을 보내서 제대를 연기시켜버릴껴~~’
    .
    허나 사제라면의 위력은 정말 무섭더라~~밤에 보초서는 날이면 백아줌마네 집에 돌을 던집니다. 백아줌마는 항상 군용 야전잠바의 솜내피를 입고 빼곡히 고개를 내밉니다.
    .
    ‘아줌마 빨리 라면 끓여줘요. 요즘 단속이 심해요. 걸리면 바로 영창가요~~’
    .
    ‘걱정 말어~ XX하사에게 순찰할 때 너무 단속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어!’
    .
    ‘이번은 대대장 지시사항이란 말이에요.’
    .
    결국은 제가 제대하는 그날까지 담벼락에 배치붙어 백아줌마 집에 라면 시켜 먹다가 걸려 영창 간 케이스는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 박병우 2004.06.26 22:38 (*.79.196.166)
    위의 글을 다시 보니 경솔한 표현이 있군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전모씨를 생각하면 군생활시절 광주사태 생각이 떠올라서...그냥 말이 막 나와버리는군요. 세상의 어느 군인이 자국민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데...
    .
    광주사태가 일어났을 때가 바로 제가 군대생활 시절이었습니다. 다행히 만번 다행히 해병대는 광주에 투입되지않았지요. 해병대는 부산과 대구에 투입되었습니다. 그기서도 민간인에 대한 피해사례가 있었겠지요. 저는 또 다행히 그기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해 80년 봄, 여름은 우리 연대는 해안방어 작전기간이었거든요.
  • 추현석 2004.06.26 23:21 (*.40.79.136)
    참으로 운이 좋으십니다.
    제 친구중엔 광주에 간 녀석이 있는데 한동안 군대 이야기를 하지 않더군요. 그러다 어느날 자살해 버렸어요.
    아무도 광주에서 그 친구가 무얼 보앗는지 무얼 햇는지 모르구요 ....... 비극입니다.
    군에서뿐만아니라 학생운동하던 친구들중에 망가진 친구들도 많구요.
    지금 금빼지 달고 꽥꽥 대는 386세대니 286세대니 하는 녀석들, 아픈 친구들을 돌보지 않더군요.
    아마 정치놀음에 옛날일들은 다 잊어버렸겠지요~~~~
  • 박병우 2004.06.27 23:03 (*.79.196.166)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있었군요. 세상과 이별을 하신 친구분께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저 역시 제 친구는 아니지만 친구의 친구입니다. 공수부대원으로서 광주사태 투입후 전역을 해서 사람이 영 멍하게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군에 갔다온 후 사람이 말이 없어지고, 정신이 영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젊은 사람들은 저만큼 실감을 못 하실겁니다. 그 당시의 특수한 분위기를 말이지요.
    .
    또 전두환이란 사람이 아직도 떵떵거리며 서울 하늘에 살고 있다는 것이 답답합니다. 이 사람은 YS 정부 때 처벌한대로 그대로 징역형을 살아야합니다. 어찌되서 사면을 했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우쨌거나 전직 대통령을 지냈고, 평생 군인이었던 점을 감안하여, 법원의 언도대로 사형에 대해서는 종신형으로 감형하더라도, 남은 인생은 구치소에서 인생을 마감하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
    군대란 특수한 조직에서는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고, 나이 어린 군인들이 뭘 압니까. 광주에 안 간것만 해도 만번 다행이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이런 생각이 더 듭니다.

  • 추현석 2004.06.28 06:41 (*.242.81.186)
    기왕 삼천포로 빠진김에 완전히 망가지도록 하지요.

    저는 전방에 있으면서 군단장 표창장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전방의 장점은 소대단위로 생활하며 소대장의 능력에 따라 부대생활이 많이 바뀔수가 있습니다.
    큰 틀이야 바뀔수 없지만 내무반 생활과 교육내용은 초등학교 처럼 소대장의 권한이 담임선생님만큼 크지요.
    특히 DMZ 속의 생활은 전적으로 소대장 책임하에 움직이지요.
    철책은 수색소대 만큼은 아니어도 분위기는 비슷하지요.
    저는 당시 박격포 소대장 및 통문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군단장 및 사단장등 고위 장성들이 제 관할의 GP 방문이 있었지요.
    저의 사단 내규에는 참모는 무장 해제를 하고 DMG속으로 들어가 GP를 방문해야 하는 엿같은 내규가 있었습니다.
    년대 말 70년대 초쯤 사단 참모 영관급 장교가 운전병과 따까리(당번병)를 권총으로 위협하며 월북한적이 있거든요.
    그 이후 참모만은 무장(개인 병기 소유)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사병과 지휘 계통상의 간부는 무장을 하고 참모는 덜렁 덜렁 DMZ안으로 들어간다는것은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르겠더군요.
    저 개인적으로는 말도 안되죠.
    그래서 저는 참모들도 무장한채로 들여 보내곤 했지요.
    결국 사단 내규는 늘 지키지 않았단 말씀이죠.
    그리고 저는 제 소대원 만큼은 제 명령을 잘 따랐지요.
    중대장 명령이나 대대장 명령 보단 제 명령이 우선했지요.
    아마 저도 구테타를 꿈꾸었던것 같습니다.
    저의 철모엔 계급장이 없었습니다.
    단지 철모엔 외계인 ET의 긴 팔을 느려뜨린 기괴한 모습하나만 덜렁 그려져 있었지요.
    소대원중에 누가 몰래 그려 놓았는데 너그러운 소대장은 책하지 않았었지요.
    통제 불능 소대장이었기에 중대장이나 대대장도 별로 간섭을 하지 않았었구요.
    조용한 최전방에 별들이 떴으니 쇠똥 둘인 대대장은 쬐금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새볔 5시부터 저한테 전화를 하더군요.
    제발 복장이나 근무수칙 규정대로 해달라고~~~~
    드디어 군단장과 사단장, 군보안대장(대령) 과 기타 참모들...
    통문에 와서 통문 규칙을 통문장이 주지 시킨후 방탄 조끼 입히고 참모는 무장해제 시키고~~~~
    이때 만큼은 통문장이 제일 셉니다.
    제 부하들은 완전무장한채 제 명령만 떨어지면 그곳에 있는 모두를 ** 시킬수 있었으니까요~~
    군단장님 통문장이 방탄복 입혀드리고, 지역 중대장이 사단장 방탄복 입혀드리고...
    두번째로 참모 순입니다.
    군보안대장인 모 대령이 제 앞에 떡 버티고 서더군요.
    순간적으로 전 객기가 발동 했지요.
    군단장 참모 직위로 왓으니 무장해제 해야 한다고 말씀 드린뒤 권총을 빼앗아 버렸지요.
    에스코트 위해 찦차에 탑승해 있던 저의 대대장의 파랗게 질리는 모습을 힐끗 볼수 있었습니다.
    일행이 GP로 들어간뒤 남은 중대장님들과 대대간부 연대간부들이 걱정이 태산이더군요.
    저보고 괜한짓했다고~~~
    전 그때 그랬죠,
    그래봐야 후방 전출밖에 더 있겠냐고~~~~
    그날밤 사단참모부로부터 전화가 오더군요.
    통문서 일어난일 보고하라고,
    곧이어 연대 인사과에서 전화가 오더군요.
    군단장 표창상신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했냐구요~~~~
    결국 일주일뒤 군단장 표창을 연대장으로부터 받고,
    그로부터 한달 뒤 서울로 전출 되었습니다.
    제대 10달 남겨 놓구서요.
    이런 전출은 아마도 전무후무 할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태능에 있는 *7 사단 교육중대장으로 있다가 장가도 가고 예편하게 되었죠.
    그래도 저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교육장교신분으로 필동에서 상황근무도 했었지요.
    이정도면 군단 보안대장 권총 빼았을만 했지요..??
    전두환정권의 시설 퍼렇던 그 시대에 말입니다.
  • 추현석 2004.06.28 06:49 (*.242.81.186)
    첨언 : 군단 보안대장은 분명 보안대장인 신분이니 무장을 시켰어야 할까요, 군단참모이니 무장해제를 시켰어야 할까요?
    지금도 수수께끼인데,
    아마 그 모 대령님 마음이 저만큼 넓었었었고,
    중위인 ET 소대장을 귀엽게 보앗던것 같습니다.
    보안대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군단과 사단 참모들이 다 보고 있었는데도~~~~
  • 박병우 2004.06.28 07:12 (*.79.196.166)
    그래봐야 후방 전출 밖에 더 있겠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장 높은 계급이 사단장, 2차장(해군참모 2차장)이니 높은 사람을 볼 일이 없지요.
    .
    우리 중대에 신임 보급 소대장이 오셨습니다. 연세대학 출신의 간부후보생 출신이었는데 아주 좋은 분이었습니다. 거의 고문관 수준이었습니다(좋은 뜻의 고문관임). 눈부터 큼직하게 생겼습니다.
    .
    보병 대대에서는 보안대 중사들이 들락날락거리는데 그 당시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습니다.
    .
    그런데 보급에서는 이 중사들에게 주는 오토바이기름은 자동으로 줘야하고 장부에 불출기재를 하지 않았던게 관행이었습니다.
    .
    일은 이 고문관 소위님이 기름을 주지 않은데서 일은 발생했는데, 보안대 중사가 불그락푸르락 난리이더군요.
    .
    '난 이 보급관 기름 안써!'
    .
    이러면서 보안대가 문을 박차고 나가더군요.
    .
    고문관 소위 뒤에 중얼거리는 말...
    .
    '기름 쓰지말아~ 말어~ 니가 기름 안 써면시 겁나는 사람있냐 시불시불...'
    .
    추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그 소위님이 생각나는군요.
  • 추현석 2004.06.28 07:14 (*.242.81.186)
    지금도 당시 대대장님 이하 중대장님들, 소대장일부, 하사관일부 참석하는 모임을 하고 있지요. 일년에 3~4번씩 만납니다.
    당시 대대 보안중사도 지금은 원사가 되어 국방부에서 근무하며 이 모임에 늘 참석하고 있죠.
    그 친구 덕분에 서울에 있던 지금의 제 처와 전화를 DMZ에 있으면서도 수시로 할수 있었습니다.
    보안대 만큼은 사제 전화와 연결되었고
    최전방에서도 음질이 또렸했습니다.
    그 친구도 통이 크지요.
    대대장은 그친굴 껄끄러워 햇는데, 저와는 친했었습니다.
    2000년 5월 5일에도 여의도에서 모임이 잇엇는데, 모 일간지에서 취재후 조그맣게 기사도 났었습니다.
    저희 부대는 을지부대 맹호대대 였습니다.
    지금은 군부대 직제 개편으로 해체되어 없어졌습니다.
  • 박정용 2004.06.28 12:44 (*.181.18.130)
    ㅎㅎㅎ "아줌아 여기 소주한병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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