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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0 20:22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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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을 기억하면 인력거꾼 김첨지는 비오는 어느날 인력거 손님이 많아서 하루 종일 달려도 인력거는 가벼워지기만 했습니다. 신바람이 났지요. 오늘 번돈으로 오랜만에 마누라가 좋아하는 설렁탕을 사주기로 마음 먹습니다. 마누라는 며칠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것이 원인이 되어 시름시름 아파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귀가 길에 동료들과 술한잔하고 마누라에게 줄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지만 마누라는 이미 죽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김첨지는 울면서 아내를 향해 소리칩니다.  

‘이 여편네야 설렁탕 사왔는데 왜 대답이 없어? 응? 대답 좀 해봐!’
.....................

저 역시 지난 주말부터 얽힌 일을 생각하면 안되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스타파티에 별 탈없이 도망가려고 마눌 학교 운동회를 녹화해주기로 하여 캠코드를 켜보니 마이크부분 감도가 떨어졌는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안양에 있는 소니서비스에 가니 사흘은 걸려야 한다는겁니다. 운동회가 내일인데... 서비스맨이 외장마이크를 구입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안양의 소니대리점과 인덕원의 전자랜드에 가보니 이놈의 외장마이크가 없었습니다. 구입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물건을 갖다놓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할 수없이 부랴부랴 용산까지 밤에 뛰었습니다. 11만원 주고 하나 구입했지요.

다음날은 운동회였습니다. 과천공설운동장에서 한다기에 갔더니만 아무도 없는겁니다. 오전 10시가 다되었는데 애들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눌에게 전화를 하려니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더군요. 겨우 지나가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려서 했더니만 전화도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학교 운동장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늦게 가는 바람에 결국 찍을려는 핵심장면은 못 찍었습니다. 그 전날 용산까지 가서 마이크를 구입했건만. 이래서 금요일 강원도로 튀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날도 별로이고.  

토요일 천문인마을에 가서 저녁무렵에 냉각 ccd 플랫트 이미지를 미리 찍을려고 했습니다. 찍어보니까 화면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얼룩얼룩한 얼룩이가 좍 나오는겁니다. 이건 또 뭔가? 몇 달전에 플랫트 이미지를 촬영할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어찌 좀 이상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지난번에 왔을 때도 일어나서 플랫트이미지를 안 찍고 촬영만 했습니다.

‘건조제가 습기를 먹었나?’

옆에 있는 선숙래씨도 보고 흡습제 문제는 아닌 것같고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입니다. 여러번 시도를 해봐도 헛일입니다. 할 수없이 밤이 되면 천체사진을 바로 찍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구상성단과 M31을 여러장으로 나누어서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결국 비가 오더군요. 부랴부랴 옥상에 올라가서 망원경을 내렸습니다. 날맑을 줄 알았는데 입에서는 궁시렁궁시렁이 나옵니다. 천문인마을 실내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후래쉬 밧데리도 딱 떨어져버리고 충전기 밧테리도 몇 번을 찍어니 다 나가버리더군요.

‘이것 분명히 충전해서 왔는데...’

남은 용량을 아끼고 아껴서 겨우 몇장을 찍었습니다. 뭐가 똑 바로 돌아가는게 없더군요. 그랬더니 나중에 날이 맑아서 부랴부랴 망원경을 올리고 세팅을 했습니다. 날씨가 사람 뺑뺑이를 돌리더군요. 그래도 날이 맑아지니 기대가 되었습니다. M15를 겨누어 사진을 찍어보니 M15 옆에 M15보다 조금 작은 커다란 대상이 두개나 있었습니다.

‘M15 옆에는 다른 대상이 없습니다.’

추선생님의 이야기를 귓가로 들어면서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M15 옆에 별이 완전히 불어서 M15만큼 크게 나와 있었습니다. 밝기 레벨을 올려보니 천체사진에도 플랫트 이미지처럼 온화면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이미지가 떠 올랐습니다. 뭔가 또 문제가 있음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더군요. 이 때가 냉각 CCD 온도 세팅을 -5도로 했는데 혹시나 건조제 문제가 아닌가 싶어서 10도로 올려서 찍어 보았습니다. 온도를 올리면 CCD면에서의 노점(露点)온도도 상승되어 이슬이 맺힐 확률이 적으니까요. 이러면 건조제 문제로 생각할 수 있지요. 온도를 올려보니 별상이 조금 작아지긴하더군요. 건조제 문제로 생각되어지긴하더군요.

결국 맑은 날씨임에도 결국 완전히 공치고 말았습니다. 하여튼 냉각 CCD는 익숙한 사람이 사용을 해야 잘 할 수 있고 안그럼 여러 가지로 애를 먹이더군요. 결국 사진 찍기는 포기하고 방안에서 잠만 잤습니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누가 잘랐는지 망원경의 히터선을 잘라놓았습니다. 용택씨가 옆에서 밤새도록 사진을 찍었는데 제 망원경에 누가 온 사람도 없다는겁니다. 거참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다음날 냉각 CCD를 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소형 빵굽는 오븐에다 건조제를 건조시키려고 말이지요. 오븐은 타이머가 15분 세팅이 최대입니다. 건조제를 건조시키는 온도는 200도 정도에서 4시간 정도가 되어야한다고 기억합니다.

지난번에 이렇게 해보니 오븐기 옆에서 보초서서 15분마다 타이머를 돌리다가 지겨워서 2시간만 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도 이 지겨운 보초를 서기 싫어서 오븐을 분해해서 타이머뒤의 선을 연결해서 오븐이 계속 ON상태가 되도록 하기로 했습니다. 4시간 건조후에는 다시 선을 잘라버리면 되니까요.

오븐은 중국제였습니다. 모조리 아연도강판 판금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판금물이 아주 얇고 약했습니다. 분해를 해보니 구조가 꽤 까다로왔고 모조리 분해를 해야만 타이머에 선 연결이 가능했습니다. 아무래도 완전히 분해했다가는 망가질 것같았습니다. 포기하고 다시 조립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이게 조립이 잘 안되었습니다. 강판인지라 벤딩부에는 탄성으로 인한 스프링백이 있고 치수가 잘 맞지 않았습니다. 겉면 철판은 U자형 좌우대칭 구조인데 집어넣어 틈새를 맞추려니 죽어라고 탱탱 튕겨나왔습니다.

이 단순한 작업을 방금까지 무려 두시간이나 했습니다. 한손으로는 본체를 잡고 한손으로는 외곽 철판을 잡으면서 끼우려다 철판에서 손가락을 네군데나 베는 바람에 오븐기에 피칠갑을 하고 신문지에는 혈서를 썼습니다. 확 뽀싸삐릴려다가 사람이 오기가 나서 안되겠더군요.

결국 조립을 완공하고 보니까 타이머선을 굳이 연결하지 않아도 해결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타이머가 안돌아가도록 손잡이에다 무엇을 대서 고정시키면 되겠더군요. 종이를 접어서 끼워넣었더니 고정이 되어 타이머가 돌아가지 않아 오븐기를 계속 켤수가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쓰야합니다. 머리는 이발소에만 가라고 있는게 아닙니다.

이 간단한 머리를 안쓰는 바람에 손가락에는 핏물이 헝건하고, 시간은 무려 2시간을 허비하고.....

요즘 물건도 모두 삐리리~ 투성이고 하는 일도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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