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게 뜻만 통하면 된다는 쪽도 있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니 제대로 써야 한다는 쪽도 있어서 칼로 자르듯이 할 수는 없습니다만.
천체사진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 중 합성과 보정(또는 후보정)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그냥 제 생각을 한번 적어봅니다.
1. 합성
영어로는 Stacking, 여러 개를 쌓아 올린다는 뜻으로 똑 같은 걸 찍어서 여러 개를 겹쳐 하나의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천체사진계에서는 아주 일상적으로 하는 일인데 저 자신을 포함하여 이 과정에 "합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합성이라는 말의 늬앙스가 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보통 “없는 걸 가짜로 만들어 낸” 경우에 사용하게 되죠.
"이 사진 합성이지?"라는 말은 "이 사진 조작한 거지?"라고 묻는 거랑 같은 뜻으로 쓰인 다는 거야 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16매를 합성해서 어쩌구 하는 말이 일반인들에게는 16매를 조작해서 했다는 건가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느낌적 느낌이 듭니다.
대체 용어가 있을까요? 쌓아올려서 결국 합성하는 거라 합성이 맞기는 맞나요?^^
층층이 쌓아올린다는 뜻의 적층이라는 한자 용어를 붙여서 "적층합성"은 어떨까요?
네 글자씩 되니 좀 길기는 한데 있는 사실을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적절해 보입니다만 입에 잘 붙지는 않네요.
학술 논문 같은데서는 이 기법을 어떤 용어로 기술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 보정
보정이라는 낱말도 뭔가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손을 댄다는 느낌이 있는 말입니다.
어딘가에 순수한 원본이 있고, 거기에 살짝 화장을 해서 보기 좋게 만들었다는 어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천체사진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 같습니다.
사실 DSLR이던 CCD던 원본 이미지를 보면 거의 보이는 게 없습니다.
레벨을 올리고 커브를 조정하고, 색균형을 맞추고 등등 뽀샵질을 비롯한 여러가지 처리를 해야 합니다.
뭔가 대대적인 처리(processing)을 해야만 제대로 된 사진이 얻어집니다.
그리고 그런 사진을 잘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어야만 제대로 찍는 천체사진가가 됩니다.
“보정하지 않은, 순수한 원본”이라는 게 그 자체의 가치를 가진다기 보다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신선한 재료”로 쓰이는 거죠.
깍고 다듬고, 삶고, 볶아주어야 재료의 가치가 살아나는 거에 비유해도 될까요?
“노출 조금 조정하고, 화이트밸런스 잡아주고, 잡티 제거하는 것”과 같은 “보정”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작업을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보정이라는 말보다는 개인적으로 “이미지 처리(image processing)”라는 용어를 선호합니다.
밤새 찍어서 들고 온 원본을 가지고 피씨 앞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작업에 대해 어떤 용어가 적절할까요?
* 보정 중에서도 후보정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사진을 촬영한 “후”에 이것저것 손을 봤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용어는 사진 촬영에서 “선보정”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역전 앞 -> 역앞 앞"과 같은 군더더기가 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진 보정은 “후”보정이니 굳이 “후”자를 붙여 쓸 이유는 없어보입니다만...
저는 누군가 물어보면..."천체사진용 디카로 찍어 뽀샵질좀 했어요" 합니다. ㅋㅋㅋ